- 콘테의 연봉 주급은???

2022년 5월 보도에 따르게 되면 안토니오 콘테 감독은 토트넘의 4위가 확정되면 큰 보너스를 수령하게 된답니다.


토트넘은 23일 오전 0시(한국시간) 영국 노리치에 위치한 캐로우 로드에서 노리치 시티와 2021-22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최종전을 치른다.

토트넘은 최종전에서 무승부만 거둬도 4위가 유력하다. 토트넘이 노리치와 비기고 아스널이 에버턴을 상대로 승리하면 승점은 동률이 되지만 현재 두 팀의 골득실 차이는 무려 15골이다. 이 정도 격차를 1경기 만에 뒤집는 건 불가능이랍니다.

콘테 감독이 토트넘에 부임했을 당시 순위는 9위였다. 콘테 감독도 4위권에 진입하는 건 확률상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토트넘은 승승장구하면서 끝내 4위 자리가 유력해졌다. 토트넘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복귀가 확정되면 콘테 감독을 비롯한 선수단에 엄청난 보너스가 있을 예정이다.

영국 '디 애슬래틱'은 21일(한국시간) "콘테 감독은 토트넘을 UCL로 이끌게 되면 약 200만 파운드(약 30억 원)의 보너스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현재 콘테 감독의 추정 연봉이 약 1500만 파운드(약 238억 원) 정도인 걸 감안하면 큰 보너스랍니다.

물론 콘테 감독만 UCL 진출 보너스를 누리는 건 아니다. 토트넘은 선수단에도 보너스를 지급할 예정이다. '디 애슬래틱'은 "토트넘 선수들은 UCL에 진출할 경우 350만 파운드(약 55억 원)의 보너스를 나누게 된다. 보너스는 각 선수에게 출전한 경기 수에 따라 분배된다. 일부 선수들은 계약 조항에 별로도 UCL 진출 보너스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토트넘은 선수들에게 상당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계약으로 유명하다"고 설명했다.

이번 시즌 리그 출장 경기 수를 기준으로 한다면 가장 많이 출장한 선수는 위고 요리스다. 그 다음으로는 해리 케인, 피에르 에밀 호이비에르, 에릭 다이어, 손흥민 순이다. 당연히 핵심 선수들에게 더 많은 보너스가 갈 확률이 높답니다.

토트넘 같은 경우에는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선수단에 보너스가 주어지지만 정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6위가 유력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선수단 연봉이 25% 정도 삭감될 것으로 알려졌답니다.

- 프로필 이력 경력

출생,나이 
1969년 7월 31일 (53세)
고향 출생지
이탈리아 풀리아 주 레체 시

신체 키 몸무게
키 176cm | 체중 77kg

소속
- 선수시절
US 레체 (1985~1991)
유벤투스 FC (1991~2004)

- 코치시절
AC 시에나 (2005~2006 / 수석 코치)

- 감독시절
AC 아레초 (2006~2007)
AC 바리 (2007~2009)
아탈란타 BC (2009~2010)
AC 시에나 (2010~2011)
유벤투스 FC (2011~2014)
이탈리아 대표팀 (2014~2016)
첼시 FC (2016~2018)
인테르나치오날레 (2019~2021)
토트넘 홋스퍼 FC (2021~ )

이탈리아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현재 토트넘 홋스퍼 FC의 감독을 맡고 있다.

유벤투스와 첼시, 인테르에서 모두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답니다.

- 선수 경력

- 클럽 경력

콘테는 고향 팀 US 레체의 유소년 팀에서 축구를 시작하였고 불과 16살의 나이에 1986년 4월 6일 세리에 A 데뷔전을 치른다. 당시 레체의 감독이었던 카를로 마조네의 지도 하에서 콘테는 팀에서 중요한 선수가 되었다. 1987년에는 정강이뼈 골절로 인하여 선수 생활이 끝날 뻔 한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나 재활 훈련에 몰두하여 1년이 채 안되어 필드에 복귀하였다. 1989년 11월 11일에는 SSC 나폴리와의 경기에서 본인의 세리에 A 데뷔골을 뽑아내기도 했다. 레체에서 총 99경기를 뛰었고 1골을 득점했답니다.

콘테의 성실함과 중원 장악 능력을 유심히 살펴 본 당대 최고의 명장 지오반니 트라파토니가 1991년에 레체로부터 그를 영입했다. 당시 유벤투스 FC의 지역 라이벌 토리노 FC도 콘테의 영입을 시도하였으나, 콘테는 우승 트로피를 획득하고자 유벤투스행을 선택했다. 콘테의 꾸준한 경기력, 프로 의식, 리더쉽, 그리고 강한 정신력은 곧 유벤투스에서도 두각을 내기 시작했고, 1996년에는 역시 세계적인 명장인 마르셀로 리피가 잔루카 비알리가 떠난 이후 유벤투스의 주장으로 낙점하여 직접 그를 임명하였다. 이후 팀의 아이돌로 떠오른 알레산드로 델피에로에게 주장직을 물려줬으나 1998-99 시즌, 델피에로의 부상으로 인해 주장으로 복귀, 2001-02 시즌까지 역할을 맡았답니다.


유벤투스에서 뛰며 콘테는 5회의 스쿠데토 우승, 각각 1회의 코파 이탈리아, UEFA 컵, UEFA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달성하며 유벤투스의 황금기에 큰 기여를 한다. 2002-03 시즌 은퇴를 앞둔 34세의 베테랑으로서 유벤투스를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으로 이끈 활약이 백미였다. 유벤투스 FC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명예의 거리 헌정 50인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답니다.

- 국가대표 경력

콘테는 1994년 5월 27일 2-0 완승으로 끝난 핀란드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친선경기에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혁명가 아리고 사키는 당시 24살이었던 콘테를 처음으로 발탁하였다. 이후 콘테는 1994 FIFA 월드컵 미국과 UEFA 유로 2000에서도 조국을 위해 뛰었고[2], 두 대회 모두 준우승이라는 성적을 거두는 데 일조했다. 다만 UEFA 유로 1996은 불참하였는데, 이는 1996년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당한 부상으로 인한 것이었다. 1994년에서 2000년까지 아주리 군단의 유니폼을 입고 20번의 경기에 나섰으며 2골을 득점하였답니다.

- 플레이 스타일

유벤투스와 이탈리아의 레전드 미드필더

콘테는 당대 이탈리아 중원 자원들 중 중요한 자원으로 분류되었는데, 그의 투쟁심과 넘치는 에너지, 그리고 전술적 다양성이 그 이유가 되었다. 콘테는 중원의 어떠한 자리에서도 뛸 수 있었으나 주로 중앙 미드필더에서 박스 투 박스, 혹은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되어 중원의 엔진 역할을 맡았고 가끔 우측 측면에 서기도 했는데 이는 그의 뛰어난 크로스 능력 때문이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당시 명성에 비해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려웠으나[3]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근면함과 꾸준함, 그리고 빼어난 축구 지능이 콘테가 가진 무기였답니다.

또한 경기의 흐름을 읽고 선수들에게 직접 고함을 치며 지시를 내리는 타고난 리더형 선수였으므로 마르첼로 리피 감독이 그를 주장으로 임명한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여기에 중거리 슈팅 능력과 전진성을 보유함으로써 간간히 원더골 및 쐐기골을 득점하였는데, 특히 발리 슈팅과 페널티 박스 바깥에서의 슈팅으로 인한 득점은 콘테의 숨겨진 장기 중 하나였답니다.


탄탄한 피지컬과 크다고는 볼 수 없는 키에도 불구 헤딩 능력까지 갖추고 있어 상대 팀 선수와의 공중볼 경합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다만 그의 투쟁심과 몸을 사리지 않는 대담한 플레이는 선수 생활 내내 콘테가 잔부상에 시달리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하지만 콘테 스스로가 회고하기를 부상에 시달렸지만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대담성이 없었다면 유벤투스에서 당대 최고를 논하던 쟁쟁했던 선수단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라고 한답니다.

- 지도자 경력

- 감독 스타일

백3의 부활에 큰 영향을 끼친 감독이다. 커리어 초기에는 특정 포메이션에 집착하지 않고 팀 상황에 맞는 포메이션을 사용했지만, 이후 3백 전술을 주 전술로 사용하면서 커리어가 만개했다. '약팀이 강팀을 상대로 내려앉는 버스 주차 전술' 이란 편견의 대상이었던 3백을 들고서도 정교하고 다채로운 빌드업을 구사하는데, 이 부분이 콘테가 유럽에 3백 열풍을 불러일으킨 결정적인 이유랍니다.

주로 3-4-3 이나 3-5-2 를 사용하는데, 양 센터백 3명 중 1명은 패싱 능력과 발밑 능력을 갖춘 센터백을 매우 선호한다. 현대 축구에서 왼발 센터백이 각광받는 것은 맞는데 콘테는 거의 집착하는 편. 콘테는 주로 왼쪽에 공격진의 무게를 싣고 게임을 전개하는데, 때문에 상대도 토트넘의 왼쪽 지역에 몰리게 된다. 이때 왼발 센터백이 주로 맡는 임무가 상대방이 적은 토트넘의 오른쪽 사이드 라인 쪽으로 롱패스를 보내 압박이 적은 방향으로 공격 방향을 한 번에 전환하는 것. 또 콘테는 센터백이 자주 오버래핑을 해서 공격에 참여하도록 지시한다. 내려앉는 팀을 상대로 수적인 우위를 가져가기 위함. 때문에 콘테의 센터백들은 발이 빠를 것 까지 요구받습니다.

윙백은 사실상 전통적인 풀백과 윙어의 역할을 거의 동시에 수행해 주길 바라는데, 때문에 활동량이 좋고 스피드가 빠르거나 연계를 활용하여 볼을 운반할 능력이 있는 윙백이 콘테 전술에서는 왼발 센터백 이상으로 필수적이다. 롱패스가 가능하면 금상첨화인데 위에서 왼발 센터백이 주로 맡는 공격 방향 전환을 윙백도 나눠가져야 하기 때문. 그리고 앞의 설명을 보면 알겠지만 콘테의 축구에서 가장 많이 혹사 당하는 포지션이기도 하다. 공격 시에는 페널티 에어리어까지 올라와 침투나 크로스를 올리면서 수비 시에는 센터백 옆까지 내려와야 하기 때문이랍니다.

중앙 미드필더는 활동량과 공을 되찾아오는 능력이 뛰어난 선수들을 선호한다. 대표적인 예가 첼시 시절의 은골로 캉테. 앞서 말했듯이 센터백이 자주 오버래핑해서 빌드업 시 전방에 수적 우위를 만들어 주는 게 콘테의 축구기 때문에, 센터백이 뛰쳐나간 자리를 메꿔주는 활동량과 지능도 필요로 한다. 콘테는 크리스티안 에릭센같이 창의적인 패서가 있으면 좋지만, 없으면 없는대로 만족한답니다

콘테의 축구에서 중앙 미드필더의 주 임무는 볼 쟁탈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공을 되찾아 오는 것이기 때문. 공을 앞으로 보내주는 임무는 윙백과 센터백이 자주 맡거나 콘테 특유의 2보 전진 1보 후퇴를 노리는 원터치 패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콘테의 원터치 패스 빌드업. 물론 중앙 미드필더에게도 패스 중 공을 뺏기지 않을 정도의 적절한 패싱력을 요구한답니다.

공격수는 로멜루 루카쿠와 라우타로 마르티네스, 해리 케인과 손흥민 같이 빅 앤 스몰을 자주 사용한다. 특히 토트넘에서는 해리 케인이 뛰어난 패싱력까지 갖췄기 때문에, 해리 케인이 2선 근처까지 내려와 공을 받아주면 따라 나오는 상대방 수비의 배후로 손흥민이 침투하고 여기에 해리 케인이 킬패스를 보내는 패턴이 많았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너무 단순하기에 이들을 보조해 줄 수 있는 슈팅력, 패스와 창조성을 갖춘 추가적인 공격 옵션이 필요하다. 인테르에서는 니콜로 바렐라가, 토트넘에서는 데얀 쿨루셉스키가 그런 역할이었답니다.


보면 알겠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에게 정말 엄청난 체력을 요구하는 감독이다. 센터백, 윙백, 미드필더, 공격수 하나같이 필드를 엄청나게 넓게 쓰고 자주 스위칭 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서 가는 팀마다 체력 훈련을 엄청나게 강조하며, 선수들의 식습관과 사생활도 집착적으로 관리한다. 그래도 스프린트로 체력 소모가 큰 공격수들은 비교적 수비적 역할을 최소화해주며 체력 관리를 해 주는 편이랍니다.

이 때문인지 오히려 압박 자체는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편이며 콘테의 수비는 페널티 지역을 지키는 정적인 수비이다. 볼 탈취는 캉테나 호이비에르와 같은 중앙 미드필더들이 도맡아 하는 일. 콘테처럼 공격시 선수들에게 저렇게 많은 체력을 요구하는 축구를 하며 적극적인 압박까지 요구한다면 체력적으로 버틸 수 있는 선수들이 없을 것이랍니다.

이렇듯 뛰어난 패서가 없어도 정교한 빌드업 시스템을 짜고 있으며, 뛰어난 패서가 있다면 더더욱 위력이 배가되는 축구를 한다. 콘테 축구의 빌드업 지표. 하지만 보다시피 펩 과르디올라 정도는 아니어도 선수들에게 꽤나 높은 역량을 요구하기 때문에, 콘테가 원하는 축구를 하려면 콘테가 원하는 선수들을 데려올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만약 못 데려올 경우 콘테의 기분이 심히 안 좋아지며 업무 능력도 급락하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 국대야 뭐 답이 없으니까 그냥 했겠지만 말이다

또 다른 단점은 큰 그림은 잘 그리고 큰 그림에 한해서는 세부적인 전술도 좋은데, 단판 승부에서의 전술 응용이나 빠른 대처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 이런 전술 응용과 발빠른 대처에 천재적으로 뛰어난 토마스 투헬 감독과는 정말 극히 상성이 안 좋아서 붙을 때마다 패배하고 전술적으로 밀려서 졌다는 인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딱히 투헬이 아니더라도 콘테의 토너먼트 성적은 국대를 제외하곤 좋지 않다. 그리고 사실 국대는 모든 팀이 손발 맞출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한 가지 전술을 갈고 닦기에도 시간이 부족해 서로 전술의 응용이나 임기응변적 대처가 힘들기 때문에 콘테의 단점이 어느 정도 가려질 수 있는 환경이랍니ㅏㄷ.

이런 전술적 능력 외에 매니징 능력도 정말 뛰어난 감독. 오히려 이 쪽을 콘테의 주 장점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위에서 말했듯이 시즌 중에는 케찹 등 소스와 음주를 금지하고 사생활도 통제할 정도로 선수들을 강하게 압박한다. 승부욕 넘치는 선수들과 자주 부딪치기도 하는데, 인테르부임 시절 전반 교체로 넣은 라우타로를 후반 다시 교체하자 화를 내는 라우타로에게 '그 따위로 말하지 마라' 라며 더 강하게 나온 것도 유명한 일화. 물론 라우타로와 콘테의 사이는 지극히 좋다. 디에고 코스타와 같이 맞지 않는 선수와는 사이가 파탄나기도 하지만 이런 자극을 통해 성장시키거나 본래의 잠재력을 100% 발휘하게 만든 선수들이 더 많답니다.

알렉스 퍼거슨, 아르센 벵거, 디에고 시메오네 등과 같이 팀을 오래토록 이끌며 장기적인 발전을 꾀한다기보단 단기적인 성과와 우승을 보장시키는 선배격 파비오 카펠로와 같은 '우승청부사'형 감독. 주전 선수 기용을 선호하는 편이고 주전들의 기량을 끌어올리는 능력이 탁월한 감독으로서 감독 역임 기간이 짧은 저니맨 기질을 갖추고 있으며 챔스같은 토너먼트보단 리그에 훨씬 적합한 타입으로 정리될 수 있답니다.

- 유벤투스 부임 이전

SS 아레초와 SSC 바리, 아탈란타 BC에서는 4-2-4 포메이션을 고집할 정도로 매우 공격적인 스타일의 감독으로 알려져있답니다.

- 유벤투스

4-3-3, 3-5-2 전술을 번갈아 사용하였다. 윙 자원이 부족하고 중앙 미드필더에 좋은 자원이 넘치는 유벤투스 상황에 맞게 3-5-2 전술 위주로 진행하였다. 3-5-2 전술에서 양쪽 스토퍼들은 풀백처럼 행동한다. 키엘리니는 중앙수비수지만 아사모아와 사이드 협력수비를 하거나 사이드에서 연계하며 전진하는 장면이 많이 나왔다. 공격수들이 수비에 적극적으로 가담해야하기 때문에 공격전개가 느리고 공격력이 답답하다. 하지만 수비 밸런스가 탄탄해져서 비록 무승부가 과하게 많지만 세리에A 최초 무패우승을 이루어냈답니다.

-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3-5-2 전술을 사용하였다.

3백의 가운데 자리에는 롱패스와 빌드업에 특화된 보누치를 고정적으로 기용하였다. 왼쪽 자리에는 발밑수비가 뛰어난 왼발수비수 키엘리니를, 오른쪽 자리에는 발밑수비가 뛰어난 바르찰리를 고정적으로 기용하여 보누치의 부족한 수비력을 보완하도록 하였답니다.


윙백 자리에는 다르미안, 칸드레바, 데실리오, 플로렌치를 돌려가며 기용하였다. 칸드레바, 플로렌치는 공격력이 뛰어난 윙백이고, 다르미안과 데실리오는 공격력보다는 수비력에 강점을 갖는 풀백에 가까운 선수인데 중요경기에서 다르미안+칸드레바 조합이나 데실리오+플로렌치 조합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왼쪽에는 수비적인 성향의 윙백을, 오른쪽에는 공격적인 윙백을 놓아 좌우 윙백 밸런스를 맞추려고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엘 샤라위와 베르나르데스키를 윙백으로 한 차례씩 기용해보았으나 수비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는지 이후에는 기용하지 않았다. 공격적인 윙백 조합인 칸드레바+플로렌치 조합도 스웨덴전에서 써보았고 경기력도 나쁘지 않았으나 칸드레바의 부상으로 이후 경기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답니다.

중앙미드필더에는 파롤로, 데로시 그리고 윙어에 가까운 성향인 자케리니를 기용하였는데 이는 중앙에서 활동량을 중시하는 동시에 유벤투스에서 주전은 아니었지만 다양한 포지션에서 자케리니를 많이 써봤기 때문에 자케리니 활용법을 잘 알고 있는 콘테 감독의 의중으로 보인다. 자케리니는 중앙미드필더지만 역습상황에서 위협적인 침투를 몇차례 보여주었고 벨기에전에서 골도 넣는 등 실제 포지션은 왼쪽 하프스페이스 공격을 책임지는 공격형 미드필더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여주었답니다.

공격수 자리에는 정통 스트라이커 한명을 중요시하는 콘테 감독의 성향에 맞게 타겟터인 그라치아노 펠레가 고정적으로 출전하였고 다른 한 자리는 당시 폼이 좋았던 에데르가 고정적으로 출전하였답니다.

당시 세리에A에서 잘나가는 윙어인 인시녜를 유로에서는 주전으로 쓰지 않았는데 인시녜의 단점인 피지컬과 탈압박능력부족 때문이기도하고 독일과의 친선전에서 인시녜-시모네 차차-베르나르데스키 3-4-3 전술을 들고 나가 4-1로 대패했을 때 생각의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침투에 강점을 갖는 임모빌레도 두어번 선발로 쓰기는 했으나 독일전이나 스페인전과 같이 중요한 경기에서는 그라치아노 펠레와 에데르 조합을 선발로 기용하였답니다.

- 첼시

첼시 감독 부임 초기에는 4-1-4-1을 썼지만 계속되는 수비불안문제에 3-4-3으로 포메이션을 바꾸더니 맨유를 4-0으로 격파하는 등 경기력이 향상되면서 이후 거의 모든 경기를 3백 전술 위주로 진행하였다. 유벤투스 때와는 달리 첼시에는 윙어진이 탄탄하기 때문에 3-5-2보다 3-4-3 전술 위주로 풀어나갔으며, 17/18 시즌에는 3-5-2, 3-4-3 전술을 병행하였다. 역시 유벤투스 때처럼 양쪽 스토퍼들이 풀백처럼 행동한답니다.

- 인테르

인테르에서는 3-5-2 전술을 주로 사용하였다. 인테르는 세리에A에서 두번째로 롱패스가 적은 팀으로 볼을 후방에서부터 차근차근 전개할 것을 지시한다. 상대팀은 크게 세 가지 대응을 할 수 있답니다.

첫번째는 인테르가 후방에서 빌드업 전진을 쉽게 하지 못하도록 사이드쪽에 강하게 전방압박을 하는 것이다. 이 경우 상대팀 선수들은 한쪽 측면으로 쏠리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이 때 왼쪽 중앙수비수나 오른쪽 중앙수비수가 반대편 윙백에게 정확한 롱패스를 보내 역습을 시도한다. 이 롱패스가 정확하게 연결되지 않으면 후방에 갇힌 채 전진하지 못하기 때문에 좋은 롱패스 능력을 갖춘 바스토니는 콘테 전술에서 핵심이었답니다.

바스토니가 부재일 경우 욕을 먹어가면서 꿋꿋이 콜라로프를 왼쪽 중앙 수비수로 기용한 것도 롱패스 킥력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빠른 역습 을 위해 윙백은 크로스 능력보다 하키미, 페리시치처럼 빠른 스피드와 볼 운반능력을 갖춘 선수들을 우선적으로 중요시했답니다.

두번째로 또한 상대팀이 좌측, 중앙, 우측 전면적으로 전방압박을 강하게 할 경우 중앙에 있던 브로조비치가 후방으로 내려와 스위퍼인 데 브라이와 동일 선상에 위치하여 횡패스를 받아준다. 데 브라이와 브로조비치가 압박을 받는동안 에릭센, 바렐라도 패스를 받아주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거나 밑으로 많이 내려와 패스를 받아준다. 상대팀은 전방압박을 강하게 한 상태이기 때문에 후방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상대팀에게 공을 뺏기지 않고 바렐라나 에릭센이 탈압박에 성공할 시 순간적으로 루카쿠와 라우타로에게 패스각이 열리게 되는데 에릭센, 바렐라는 이들에게 긴 패스를 보내고 다시 루카쿠와 라우타로가 라인브레이킹을 시도하며 침투패스를 시도하여 득점한답니다.

세번째는 이러한 인테르의 역습이 두려워 전방압박하지 않고 뒤로 물러나는 팀이 있다. 이 경우 인테르의 수비라인은 볼을 점유할 여유가 생기게 때문에 양쪽 스토퍼인 바스토니와 슈크리니아르는 과감하게 전진드리블을 치고 수비진끼리 패스를 끊임없이 돌려가며 에릭센, 바렐라, 루카쿠, 라우타로의 움직임을 주시하다가 패스각이 보일 때 과감한 패스를 시도한다. 페리시치와 하키미는 수비진이 전방으로 올라간 중원과 공격진에게 보내는 패스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양쪽 사이드로 넓게 벌려 상대팀의 중앙 압박을 사이드로 분산시킨답니다.

만약 상대팀이 사이드로 분산하지 않고 중앙밀집해있으면 페리시치와 하키미에게 넓은 공간이 열리게 되므로 윙백이 그 공간을 전진하여 공격을 진행한다. 상대팀은 전체적으로 뒤로 물러나있는 형태이기 때문에 촘촘한 전방압박을 가하고 공을 계속 돌려가며 90분 내내 상대팀을 압도하려는 소위 가패축구[4] 형태가 나오게 된답니다

- 토트넘

3-5-2를 주로 운영했던 인테르 시절과는 달리 3-4-3으로 운영하고 있다. 시즌 중도에 부임했기도 하고 경기력이 들쭉날쭉하기 때문에 선수들의 기용변화, 선수들의 위치나 움직임에 계속 변화를 주면서[6] 최적의 값을 찾는 과도기과정으로 보인다. 다만 11라운드 부임직후부터 29라운드까지의 경기를 종합해봤을 때 기본적인 틀은 큰 변화를 주지 않고 매번 그대로 가져가고 있답니다.

수비시 모든 선수가 수비가담한다. 역습전환시 중앙에 있는 해리케인에게 공을 빠르게 연결 후 다른 공격수와 윙백이 빠르게 침투한다. 역습이 여의치 않을 경우 공을 최후방으로 돌린다. 전개가 원활하지 않을 경우 벤데이비스와 로메로도 높이 올라가 공격에 가담하며 다이어만이 후방에 남는다. 20-21 시즌을 기점으로 동 리그 내에서 웬만한 미드필더 이상의 플레이메이킹을 보여주는 만큼, 빌드업 단계에서 대부분의 공이 해리 케인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 수비&역습

수비시 해리 케인이 중앙에서 기점 역할을 하며, 손흥민과 쿨루셉스키는 윙백 자리까지 내려와 수비가담했다가 서서히 올라간다.[7] 상대의 공을 뺏어내고 해리 케인에게 성공적으로 공을 보냈을 때 윙백과 공격진은 빠르게 전방침투한다. 공을 뺏어낸 수비수나 미드필더[8]는 해리케인에게 연결해주며 그것을 다시 손흥민과 쿨루셉스키가 받아 전진한다. 물론 무조건 그런것은 아니고 손흥민이나 쿨루셉스키가 내려와 해리케인에게 연결해주거나 벤탄쿠르가 공을 몰고 전진하기도 하는 등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행동한답니다.

빠른 역습에 실패했을 경우 공을 최후방으로 돌린다. 윙백은 전진하고 중앙미드필더는 후방빌드업을 돕는다. 양쪽 스토퍼인 벤데이비스와 로메로는 상대의 압박강도에 따라 행동지침이 달라진다.

상대가 전방압박을 강하게 하여 측면에 갇힐 경우 중앙에 있는 해리 케인에게 패스하거나 전방에 나가있는 윙백 또는 손흥민에게 롱패스를 시도한답니다.

상대가 전방압박하지 않고 물러날 경우 센터백들은 과감하게 전진드리블 쳐서 윙백과의 연계를 통해 윙백의 전진을 돕거나, 중앙으로 볼을 배급한다.

상대가 전면적으로 전방압박을 강하게 할 경우 해리 케인, 손흥민, 쿨루셉스키까지 후방으로 내려와 후방빌드업에 관여해 압박을 풀 수 있게 돕는다.

- 지공시 공격(높은 라인 상대)

중앙이 엷을 경우 중앙 라인브레이킹을 시도하고, 사이드가 열렸을 경우 윙백이 침투한답니다.

공격수들은 전방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며 라인브레이킹을 시도하거나 내려와서 공을 받아주고 다시 침투하는 움직임으로 상대를 끌어들이고 빈공간을 만들어내며 그 빈공간으로 다른 공격수가 침투한다. 이 과정에서 상대수비가 가운데로 몰려 사이드가 열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 때 윙백이 빠르게 침투한다. 상대수비가 가운데로 몰리지 않을 경우 상대적으로 중앙이 엷기 때문에 공격진이 중앙 라인브레이킹을 시도한다.

- 선수단 운영

로테이션을 잘 안 돌리는 편이라고 알려졌지만, 그렇다고 답도 없는 베스트 11 성애자는 아니다. 코파 이탈리아에서 아예 서브급 선수들에게 기회를 준 편이었다. 무패 더블이 가능했던 11-12 시즌 결승전에서마저도 서브를 기용하였을 정도이다.13-14 시즌 레알 마드리드 전에서 깜짝 선수비-후역습 4-3-3 카드를 쓰는 등 시즌 내내 한 전술만 고집하는 감독은 또 아니고, 선수들이나 동료 감독들에게 전술적으로 많은 칭찬을 받는 편이기도 하답니다.

선수 신체적, 정신적인 부분을 모두 탁월하게 지배하는 감독이다. 콘테 입성 이후 비노보의 저주라 불릴 정도로 부상이 잦았던 유베의 부상 빈도가 정상화되었다. 77을 찍었던 당시 선수들에게 한 일갈은 피를로의 자서전에도 적혀있고, 피를로는 콘테를 상당히 칭찬하였다. 멘탈에 문제가 있다는 평을 듣고 있는 비달, 포그바에 끝판왕 소리까지 들은 테베즈, 오스발도를 큰 문제없이 관리하기도 하였답니다.

선수를 영입함에 있어 소통을 많이 하는 감독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에게 항명하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가차없이 쳐내는 감독이기도 하다. 유벤투스 시절에도 초보 감독이라고 무시하며 콘테의 지시에 불응 및 항명하는 선수들 여럿이 잘려나간 게 그 예. 다만, 레토 지글러의 경우는 아직도 미스터리이다.[14] 첼시 시절 이바노비치, 오스카, 미켈 등 성실한 플레이를 보이지 않는 유명 선수들도 콘테의 눈밖에 나버렸답니다.

콘테는 기량이나 이름값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열심히 뛰려는 에마누엘레 자케리니, 빅터 모제스, 마르코스 알론소 같은 선수를 더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화를 낼 때는 모든 스탭들이 긴장한다고 할 정도로 호랑이 감독으로도 유명하답니다.

다만 단점이 있다면 경기 중 위기에 처했을 때 대처하는 모습이 아쉽다. 선수, 전술 교체 타이밍 모두 아쉬운 편이라 전술 변화나 선수 교체로 역전승을 이끌어내는 경기가 많지 않다. 특히 유럽 대회에서 만족스럽지 않았던 성적과 겹쳐 많은 비판을 받았던 부분이다. 그래도 첼시 부임 이후부터는 용병술이 나름 성공하기도 해서 이 부분에서는 어느 정도 발전을 이루었다.

- 가족관계

형인 잔루카 콘테와는 4살 차이가 난다. 형 잔루카는 한날한시에 프로에 데뷔했으나 1시즌 만에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고향 근처에 있는 포자 대학교 (Università degli Studi di Foggia)에서 스포츠과학 학사학위를 받은 뒤 감독 라이센스를 취득하고 안토니오 콘테의 수석코치로 일하였다. 토트넘에서는 비디오 분석을 담당한답니다.

배우자는 엘리자베타 머스카렐인데 토리노 출신이고 생일은 1975년 12월 3일이다. 2004년부터 연애하기 시작해서 2013년에 결혼했다. 딸 비토리아는 2007년 11월 9일생이랍니다.

딸바보이다. 외동딸인데다가 사진을 보면 알다시피 무척 귀엽기도 하다. 콘테가 수염을 길렀을 때 딸이 아버지가 나이들어 보이는게 싫다 고 말하자 곧바로 면도를 했다. 본인은 이에대해 아내가 수염을 꽤 마음에 들어했던 것 같은데 자신한테는 딸의 평가가 더 중요하다고 인터뷰했었다. 그래서인지 수염을 전혀 기르지않고 항상 깔끔한 용모를 유지하고 있답니다.

2021년 토트넘 부임 당시 그 이유에 대해 커리어 외적으로 인테르와의 계약서에 이탈리아 바깥의 클럽에 이임할경우 이직 보너스로 2백만 유로를 더 지급한다는 조항을 넣었기 때문이 아니겠냐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본인 인터뷰에 따르면 부임시점을 기준으로 만 13세인 딸의 교육 문제가 더 큰 이유였던 것으로 보인답니다.

영국의 귀족 교육은 유럽에서도 정평이 나있으며 값비싼 학비만 감당한다면 성적과도 관계없이 최고의 교육환경을 누릴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토트넘의 연고지인 런던은 돈만 있다면 살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런던은 손꼽히는 교육시설도 두루 갖춰져있어 콘테의 가족이 생활하기 더 없이 훌륭한 곳이다. 첼시 감독 시절에 직접 경험을 해보았을테니 런던 팀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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